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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산책] 언어의 온도

말과 글이 머무는 자리

‘문장산책’은 신문, 문학, 음악, 영화 등 다양한 영역에서 인상 깊은 글귀를 선정해 인사이트를 제공하는 콘텐츠다. 댓글 참여형 코너로 운영되어 임직원들은 콘텐츠를 읽은 뒤 게시판에 감상평을 남길 수 있다. 또한 매회 제시되는 5지 선다형 문장 중 가장 와 닿는 한 줄을 선택하면, 추첨을 거쳐 도서∙음반 등 문화상품을 경품으로 증정한다. ‘문장산책’ 첫 주제는 이기주 작가의 에세이 『언어의 온도』이다.

| 홍보 CSR팀 이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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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기주 작가의 '언어의 온도' >

(사진제공_출판사 말글터)

​이 달의 문장산책

[언어의 온도] | 이기주

"말과 글은 머리에만 남겨지는 게 아닙니다.

가슴에도 새겨집니다.

마음 깊숙이 꽂힌 언어는

지지 않는 꽃입니다.

우린 그 꽃을 바라보며

위안을 얻기도 합니다."

『언어의 온도』는 말과 글에 숨겨진 감정의 체온을 탐구하는 책이다. 지하철에서 스쳐 지나간 말 한마디, 단어의 어미 하나가 어떻게 관계를 녹이거나 얼리는 지를 짚어낸다. 나아가 독자로 하여금 질문하게 한다. “지금 나의 언어는 몇 도일까?” 


무심코 내뱉은 말 한마디에 소중한 사람이 떠났다면 ‘말 온도’가 뜨거웠던 게 아닐지, 한 두줄 문장에 상대방이 마음을 닫았다면 ‘글 온도’가 너무 차가웠던 걸지도 모른다. 이 책은 어떤 말을 하는 것보다 어떻게 말하는 지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일상 언어로 풀어냈다.


작가는 독특한 버릇이 있다. 대중교통을 타며 사람들의 대화를 엿듣고 마음에 남는 문장을 기록한다. 물론 거칠고 불필요한 말들이 귀를 더럽힐 때도 있었지만 이 과정에서 작가는 언어에도 온도가 있고, 따뜻함과 차가움의 정도는 저마다 다르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책은 깨달음을 시작으로 작가가 펼쳐놓은 일상 이야기를 들여다보며 독자 스스로 자신의 언어 행태와 삶에 대해 되돌아보게 한다.


본문 곳곳에는 동그란 잉크 무늬가 스며 있다. 이는 이른 새벽에 숲길을 걷듯 문장을 곱씹어 보며 독자들의 일상에 작은 여백이 생겼으면 하는 작가의 바람이다.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마주하는 잉크 자국은 사람에 치이고 삶에 지친 이들에게 잠시 숨을 고르자고 말하는 마음 점 하나, 즉 쉼표(,)를 찍어준 듯하다.


『언어의 온도』에 수록된 문장들을 따라가며 말과 글이 어떤 온도로 새겨지는 지 살펴보고자 한다. 어떤 한 줄은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묻어뒀던 기억을 불러낼 수도 있다. 이러한 차이 역시 각자가 지닌 ‘언어의 온도’일 것이다.

1) 그냥 한 번 걸어봤다(32p)

버스 안에서 일흔쯤 돼 보이는 어르신이 휴대전화를 매만지며 “휴~”하고 한숨을 크게 내쉬는 모습을 보았다. 10분쯤 지났을까. 어르신은 조심스레 전화기를 귀에 가져다 댔다. 우연히 통화 내용을 엿들었는데 시집간 딸에게 전화를 거는 듯했다. 


“아비다. 잘 지내? 한 번 걸어봤다…”


대개 부모는, 특히 자식과 멀리 떨어져 사는 부모는 “한 번 걸었다”는 인사말로 전화 통화를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왜 그러는 걸까. 정말 일상이 지루하고 재미가 없어서, 그냥 무의식적으로 아무 이유 없이 통화 버튼을 눌러보는 것일까. 심심해서?


그럴 리 없다. 정상적인 부모가 자식에게 취하는 모든 행동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내 추측은 이렇다. 당신의 전화가 자식의 일상을 방해하는 게 아닐까 하는 염려 때문에, “한 번 걸어봤다”는 상투적인 멘트를 꺼내며 말문을 여는 것은 아닐까.
행여나 자식이 “아버지, 지금 회사라서 전화를 받기가 곤란해요” 하고 말하더라도 “괜찮아, 그냥 걸어본 거니까”라는 식으로 아쉬움을 드러내지 않으면서 덤덤하게 전화를 끊을 수 있기 때문은 아닐까.


그냥 걸었다는 말의 무게는 생각보다 무겁고 표현의 온도는 자못 따듯하다. 그 말 속에는 “안 본 지 오래됐구나. 이번 주말에 집에 들려 주렴.”, “보고 싶구나. 사랑한다” 같은 뜻이 오롯이 녹아 있기 마련이다. 


거리에서 혹은 카페에서 “그냥…”으로 시작하는 문장이 청아하게 들려올 때가 많다. 퇴근길에 부모는 “그냥 걸었다”는 말로 자식에게 전화를 걸고 연인들은 서로 “그냥 목소리를 듣고 싶어서”라며 사랑을 전한다.


“그냥”이란 말은 별다른 이유가 없다는 걸 의미하지만, 굳이 이유를 대지 않아도 될 만큼 충분히 소중하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후자의 의미로 “그냥”이라고 입을 여는 순간, ‘그냥’은 정말이지 ‘그냥’이 아니다.

2) 원래 그런 것과 그렇지 않은 것(95p)

 “원래 그런 거라니까!” 


학창시절은 물론이고 졸업 후 사회생활을 시작하면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듣는 말이다. 신통한 문장이다. 마법의 지팡이 같은 이 한마디가 모든 상황을 정리한다. 상대가 아무리 얼토당토 않은 궤변을 쏟아내도 웬만해선 토를 달 수 없다. “그게 아닌 것 같은데요?” 하고 이의를 제기하는 순간 자칫 엉뚱하고 삐딱한 사람으로 인식된다.”


“원래 그렇다”는 표현에 익숙한 우리는 질문에도 익숙하지 않은 것 같다. 수업 시간만 해도 그렇다. 교사도, 학생도 질문을 독려하지 않는다. 질문도 안 했는데 답을 먼저 가르쳐준다. 그래서 열심히 답만 외운다. 어쩌다 “궁금한 것이 있나요?”하고 질문을 받으면 시선을 외면하기 바쁘다.


질문을 허용하지 않는 문화가 외부로 향하는 건 그렇다 치자. 문제는 그런 태도가 내부로 향할 때다. 질문하는 법을 잃어버린 이들에게 선택지는 크게 두 가지인 듯하다. 순응 아니면 체념이다. 체념은 슬픈 단어다. 사전에 실린 정의는 이렇다. ‘희망을 버리고 아주 단념하는 것’. 


무서운 이야기다. 희망을 삼켜버린다니… 이런 까닭에 오지 탐험 전문가들은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곧잘 한다.


“조난자를 죽음으로 내모는 건 식량 부족도 체력 저하도 아닙니다. 조난자는 희망을 내려놓는 순간 무너집니다. 체념은 삶에 대한 의지까지 꺾습니다.”


 세상이 변해도 빨리 변한다. 정답은 없다. 복잡한 사실과 다양한 해석만 존재할 뿐이다. 사정이 이러한데 세상에 ‘원래 그러한 것’이 얼마나 되겠는가. 삶도 사람도 그리 단순할 리 없다.


사람은 누구나 가슴 속에 낙원을 품고 살아간다. 우리는 그것을 꿈이라고 부른다. 낙원에 도달하려면 일단 떠나야한다. 어떻게? 호기심이라는 배에 올라 스스로 물음을 던지고 자신만의 길을 찾는 수밖에.


 돌이켜보면 내 내면에서 스멀스멀 피어 올랐던 질문처럼 절박하고 명확한 것도 없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 길을 따라가는 과정에서 널찍한 신작로는 아니지만 나만의 샛길을 발견하곤 했다.


 호기심이 싹틀 때 “원래 그렇다”는 말로 억누르지 않았으면 한다. 삶의 진보는, 대개 사소한 질문에서 비롯된다.

3) 사랑이란 말은 어디에서 왔을까(119p)

사랑이란 말은 어디에서 왔을까?

여기에는 몇 가지 설이 있다. 어떤 학자는 사랑이 살다(활, 活)의 명사형일 것으로 추측한다. 하지만 나는 생각할 사(思)와 헤아림(量)을 의미하는 한자를 조합한 ‘사량’에서 사랑이 유래했다는 설을 가장 선호한다.

그도 그럴 것이 사랑을 하면 상대에 대한 생각을 감히 떨칠 수 없다. 상대의 모든 것을 탐하려 든다. 이유는 간단하다. 사랑에 빠지는 순간 상대는 하나의 세계, 우주, 하나의 시대이므로.

어제는 노트북을 켜고 ‘사람’을 입력 하려다 실수로 ‘삶’을 쳤다. 그러고 보니 ‘사람’에서 슬며시 받침을 바꾸면 ‘사랑’이 되고 ‘사람’에서 은밀하게 모음을 빼면 ‘삶’이 된다.

몇몇 언어학자는 사람, 사랑, 삶의 근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같은 본류를 만나게 된다고 주장한다. 세 단어 모두 하나의 어원에서 파생했다는 것이다.

세 단어가 닮아서일까. 사랑에 얽매이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도, 사랑이 끼어들지 않는 삶도 없는 듯하다.

‘사람’, ‘사랑’, ‘삶’, 이 세 단어의 유사성을 토대로 말하고 싶다. 사람이 사랑을 이루면서 살아가는 것, 그게 바로 삶이 아닐까?

4) 분노를 대하는 방법(231p)

극지에 사는 이누이트(에스키모)들은 분노를 현명하게 다스린다. 아니 놓아준다. 그들은 화가 치밀어 오르면 하던 일을 멈추고 무작정 걷는다고 한다. 분노와 감정이 가라앉을 때까지. 


그리고 충분히 멀리 왔다 싶으면 그 자리에 긴 막대기 하나를 꽂아두고 온다. 미움, 원망, 서러움으로 얽히고설킨, 누군가에게 화상을 입힐 지도 모르는 지나치게 뜨거운 감정을 그곳에 남기고 돌아오는 것이다.


어쩌면 활활 타오르던 분노는 애당초 내 것이 아니라 내가 싫어하는 사람에게서 잠시 빌려온 건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이라는 냉각기를 통과해서 화가 식는 게 아니라, 본래 분노가 태어난 곳으로 돌아간 것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빌려온 것은 어차피 내 것이 아니므로 빨리 보내 줘야한다. 격한 감정이 날 망가트리지 않도록 마음 속에 작은 문 하나쯤 열어 놓고 살아야겠다. 분노가 스스로 들락날락 하도록, 내게서 쉬이 달아날 수 있도록.

5) 이름을 부르는 일(277p)

누군가의 이름을 부르는 행위는 하찮은 일이 아니다. 이름을 뜻하는 한자 명(名)은 저녁 석(夕)밑에 입 구(口)를 받친 구조다. 이름 글자 그대로 풀어보자. 저녁에 입을 벌리다? 나쁘지 않지만 좀 더 상상력을 발휘해보면 어떨까. 


때는 바야흐로 인류의 생활 방식이 수렵과 채집에서 유목과 농경으로 넘어가던 어느 날 저녁, 단백질과 탄수화물을 확보하기 위해 동분서주한 아버지와 어머니가 지친 몸을 이끌고 집으로 들어온다.


주린 배를 움켜쥐고 있던 아이들의 귀에 인기척이 들려온다. 하지만 토머스 에디슨이 백열전구를 발명하기 전이기 때문에 천지는 어둠(夕)과 정적으로 뒤덮여 있다.
순간 부모다 입(口)를 크게 벌려 아이들의 이름(名)을 외친다. “영희야, 철수야, 잘 있었느냐? 먹을 것 구해왔다!”


캄캄한 밤, 어둠 속에서 자식의 안위를 확인하기 위해 부모가 목놓아 외치는 것이 바로 이름이다. 누군가의 이름을 부르는 행위는 상대방의 편안함과 위태함을, 정체성을 확인하는 일이다. 


가족이나 친구의 이름을 말할 때 욕지거리를 섞어 부르고 있다면, 그런 표현이 혀에 착착 달라붙는다면 부끄러운 줄 알아야한다.


이름을 부르는 일은 숭고하다. 숭고하지 않은 이름은 없다.

6) 번외: ‘이름’에 대한 단상 (『한 줄 카피』 384p. 인용)

이름은 부모가 아이에게 보내는 첫 편지 일지도 모른다. 고작 한두 글자. 그래서 부모는 고민한다. 이런 아이로 자랐으면 좋겠다. 


흘러 넘치는 마음을 가슴에 품고 종이로 향한다. 뱃속의 생명에게 말을 걸며 펜을 움직인다. 몇 번이고 쓰고 몇 번이고 생각한다. 또 쓴다.


그렇게 소중하게 지은 이름. 그것은 부모가 아이에게 보내는 ‘한 통의 편지’라고 생각한다. 


아이들은 인생이라는 시간을 들여서 천천히 읽어 줄 것이다. ‘편지’를 쓴 날 부모의 마음을. 


일생 자신의 이름만큼 많이 보는 글자는 없다. 이렇게 반복해서 읽히는 다른 편지는 없다.

< 이름은 가장 짧은 러브레터, PILOT 2012 기업 광고「名前という手紙」ペー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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