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말 우리글
우리말 다듬기(20)

방송은 시청자 중심의 방송 언어를
사용해야 한다.
김상준
언론학박사
(전) KBS아나운서실장
(전) 동아방송대 교수
프로그램을 마친 방송 진행자나 뉴스 앵커들이 다음과 같이 쓰는 경우가 많다.
“오늘은 여기까지입니다.” 필자는 이 말을 듣고 집주인이 문을 쾅 닫는 느낌을 받는다.
과거에는 TV나 라디오를 불문하고, “지금까지 <생방송 아침마당>을 함께 해주신 여러분 고맙습니다. 내일 다시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이런 식의 인사말이 일반적이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오늘을 여기까지입니다.” 라고 하는 경망스러운 말이 늘어나고 있다. “오늘은 여기까지”는 다음과 같은 경우를 연상하게 하는 말이다. 골목길을 걷고 있을 때 땅 주인이 갑자기 나타나, “여기서부터는 우리 땅이니 들어오지 마시오.” 한다면 황당할 것이다. 아니면 장사꾼이 일찍 장사를 마치면서, “오늘은 그만합니다.” 이렇게 손님을 막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KBS 12시 뉴스 지금 시작합니다.”도 경망스럽다. ‘지금’은 빼고 “KBS 정오 뉴스입니다.”가 더 자연스럽다. 그리고 ‘열두 시 뉴스’보다 ‘정오 뉴스’가 더 품위있는 표현이다.
다음과 같은 말도 한번 생각해 보자.
“저희는 건강한 모습으로 내일 다시 오겠습니다.” “저는 잠시 후에 다시 오겠습니다.”
요즘 방송에서 시시덕거리는 프로그램이 늘어나면서 많이 등장하는 멘트이다. 심지어 “우리는 건강한 모습으로 내일 다시 올게요.” 이렇게 되면 할 말을 잊게 된다. 시청자는 안중에 없다는 표현이다. 과거에는 “건강에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이런 말도 쓰지 않도록 했었다. 건강은 질병이 아니라 몸이 좋은 상태이니 조심해야 할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에도 과거에는 대개 이렇게 마무리했었다. “날씨가 추워졌습니다. 건강에 유념하시기 바랍니다. 내일 다시 뵙겠습니다.” 이것이 일반적으로 방송을 마치면서 하는 인사였었다.
다음과 같은 말도 다시 생각해보자.
“즐거운 주말 되시기 바랍니다.” “즐거운 설 되시기 바랍니다.”
시청자가 주말이 되고 설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이 말은 “주말 즐겁게 보내시기 바랍니다.”
“설날 가족과 함께 즐겁게 보내시기 바랍니다.” 이런 정도면 어떨까?
그런데 장난삼아 구글 번역기에 “즐거운 설 되시기 바랍니다.”라고 말했더니,
“I hope you have a happy Lunar New Year.” 이렇게 바로잡아서 통역하는 것이었다.
반대로 통역문 그대로 영어로 말했더니,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길 바랍니다.”라고 품격 있게 통역하는 것이었다. “즐거운 설 되시기 바랍니다.”는 어법에 맞지 않은 비문非文이다.
다음과 같은 말도 진행자 중심의 언어 표현이라 할 수 있다.
“아무개 장관에게 질문을 던졌습니다.” 라는 질문도 “아무개 장관에게 질문했습니다.”로 해야 한다. “아무개 기자에게 물어보겠습니다.” 보다는 “아무개 기자와 말씀 나눠보겠습니다. 아무개 기자와 함께 알아보겠습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어떠한 경우라도 방송은 시청자가 궁금해 하는 것을 알려준다는 자세를 잊지 않아야 한다.
다음은 일기예보에서 자주 나오는 말이다.
“오늘은 전국이 춥겠습니다.” 이런 말도 과거에는, “오늘은 전국적으로 춥겠습니다.” 이렇게 했었다. 다음과 같은 말도 거슬리는 표현이다. “오늘은 날씨가 나빠질 것으로 전망됩니다.”“이번 태풍으로 많은 피해를 입을 것으로 전망됩니다.” 전망展望이라는 말은 일반적으로 긍정적이고 낙관적일 때 쓰는 표현이다. 그리고 장기적인 것을 예측할 때 쓰는 말이다. “이번 태풍은 한반도를 우회해서 동해로 빠져나갈 것으로 전망됩니다.” “올 하반기부터는 경기가 풀릴 것으로 전망됩니다.” 전망은 이렇게 쓰는 말이다.
방송언어는 정확한 발음, 알맞은 크기, 적절한 속도를 갖춘 아름다운 한국어라야 한다. 거기에 시청자를 주인으로 모시는 마음이 담겨 있어야 한다. 방송언어는 또 일상언어에서 느낄 수 있는 소탈함이나 따스함, 풍부한 정감을 불어넣어서 살아있는 말이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