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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제공: Ilya Pavlo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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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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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와 인생

이규항

 

KBS 아나운서 실장 역임(2회)

KBS 2대 한국어 연구회장

국어심의위원(문체부)

국어연구소 외래어 심의위원(現국립국어원)

야구, 민속씨름, 유도 전문 캐스터

축구 경기는 규칙을 몰라도 관전할 수 있으나 야구 경기는 규칙을 모르면 관광 여행 때 명승고적의 유래를 모르고 보는 것과 같다. 인생은 흔히 108번뇌의 고해라고 하는데, 야구공의 실밥 수는 108바늘이다. 9회 경기에서 3회까지는 초반, 6회까지는 중반, 7회 이후는 종반이라고 하는데 인생의 초년, 중년, 노년과 흡사하다. 초창기 야구에서 공의 실밥의 수가 100 이하일 때는 공의 탄력이 없어 안타가 힘들어 타자가 불리했다. 반변 108바늘 이상이 되면 탄력이 지나쳐 투수가 불리해 타자와 투수를 배려한 절묘한 수가 108이었다. 야구 경기에서 가장 많이 벌어지는 장면이 내야 땅볼인데 내야수가 수비한 공을 1루에 던졌을 때 타자가 이슬아슬하게 아웃되는 경우이다. 이는 수많은 실험을 통해서 타석과 1루까지의 거리가 정해졌을 것이다.

초등학교 야구 선수들이 가징 선호하는 포지션이 투수와 유격수이며 싫어하는 포지션은 포수이다. 9명의 선수들은 분업화되었다. 평균 3시간의 긴 시간, 가슴과 급소 보호장비인 무거운 Protector와 Vike를 착용하고 140Km 안팎의 공을 손가락으로 투수에게 전하며 쪼그리고 앉아 있는 포수, 내야 수비의 꽃인 더블 플레이(Double Play)와 키스톤 플레이(Keystoneplay)를 연출하는 유격수와 2루수. 키스톤(Keystone)이란 동대문 같은 석조 아치 홍예문에서 최상부의 쐐기돌을 뜻한다.

 

그리고 1루수와 3루수 외야 3명의 선수는 수비에 부담이 없는 대신 타격이 우수한 선수가 배치된다. 글로브도 분업화되어 1루수와 포수는 포지션의 임무에 걸맞는 미트(mite)를 착용한다. 1루수는 닻을 내리고 항구에 정착해 있는 배와 같다고 해 앵커맨(anchor man)이라고 한다. 흔히 투수와 포수를 일컬어 배터리(battary)라고 한다. 포병 부대에서 두 명의 포병이 짝을 이루어 한 명은 포탄을 넣고 한 명은 사격을 하는 것처럼 포수는 투수가 던질 수 있게 공을 건네주는 역할 분담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나는 야구 중계방송에서 투수는 남편, 포수는 집안에서 온갖 궂은일을 하는 아내로 묘사했다.

스트라이크는 어떻게 결정될까. 투수와 포수 사이의 거리는 18.44m이며 포수 앞의 오각형의 홈플레이트의 폭은 야구공 5개가 들어간다. 투수가 던진 공이 홈플레이트에 들어가면 서 타자의 무릎과 팔꿈치 사이를 통과해야 한다. 투수 입장에서는 스트라이크 존(zone)이 좁은 키 작은 선수한테 불리하다. 한때 국가대표 야구 선수 선발 때 단신의 선수가 1번 타자로 기용된 것은 안타를 못 치더라도 네 개의 볼로 출루율이 높았기 때문이었다. 미국 야구사에서 가장 빠른 투구를 한 선수는 텍사스 레인저스의 Noran Ryan 투수인데 160km의 투구를 해 그를 100마일 투수라고 하였다.

한때 방송과 신문에서 투수의 빠른 구질의 공을 强速球강속구로 잘못 통용된 적이 있다. 일본의 초창기 야구 시절, 미국의 Fast Ball을 번역했을 때 철학적(?) 번역으로 剛速球강속구라고 하였다. 强과 剛은 유사 개념이지만 剛에는 弱의 성질이 포함되어 있다. 유도의 역학 원리인 柔는 능히 剛을 제압한다는 柔能制剛의 명제에서 확인할 수 있다. 투수가 공의 실밥을 잡고 회전이 빠르게 던진 剛速球는 장타를 허용하는 약점이 있다. 반면 공의 실밥을 잡지 않고 던진 强速球는 위력이 있다. 타자가 10번의 타석 가운데 7타석에서 실패하고 3타석에서만 안타를 기록해도 强打者로 인정받는다. 인생살이에서 성공한 사람도 실패한 경우가 더 많은 것과 일맥상통한다. 인생살이의 직업처럼 야구에는 음지와 양지의 역할이 있다.

야구 경기에서 감독이 가장 싫어하는 것이 경기 초반에 실책으로 失點실점했을 경우이다. 실점 이후 내외야수들은 기분이 나빠 집중력이 떨어지면서 또다시 연속 안타를 허용하는 날의 이런 경기는 실패할 확률이 높다. 인생에서도 결정적인 실수 한가지로 인생의 패배자가 된 예는 허다하다. 축구와 달리 야구는 정적인 경기이지만 타자가 바꿀 때마다 수비의 자세가 달라지기도 한다. 타자마다 잘 치는 안타가 있기 때문이다. 이 밖의 여러 요인으로 Thinking Baseball이라고 한다. 내가 야구 중계를 한창 하던 시절에는 수비의 부담이 내야수에 비해 적은 외야수 출신 감독이 없었다. 일본 프로야구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인간의 小貪大失의 본능을 이용한 야구 작전에 陽動作戰이 있다. 壘上에 주자가 1루와 3루 때 1루주자가 2루로 도루할 듯 투수를 속이는 순간 3루 주자가 홈으로 들어오면서 득점하는 경우이다.

나는 1982년 프로야구 출범 이전 1960년대부터 야구 캐스터로 왕성한 활동을 했다. 총 21명의 해설자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는 분은 서울商大 출신의 야구인 이호헌 선생이다. 미국과 일본 프로야구의 최신 뉴스와 함께 선천적인 구수한 경상도 입담은 성우들이 방송 녹음 중 쉬는 중간에 말투를 흉내 낼 정도였다. 야구 중계는 다른 종목에 비해 상황이 다양하여 야구팬들은 한 편의 드라마를 보는 듯했다. 나는 조물주가 내려주신 聲帶성대라는 악기로 상황에 맞는 드라마틱한 上中下의 톤으로 연주하듯 즐기며 중계를 했다. 캐스터는 연기자이자 연출가이다. 정년 후에는 일본 프로야구 주니치에 입단한 선동렬, 이종범의 활약상을 위성방송으로 서을에서 1년, 도쿄에서 2년 중계했다. 이때 한 경기의 5시간 26분 중계는 최장 중계 기록일 듯하다.

나이가 60대의 지인들에게는 6회 初末, 70대는 7회 행운의 初末, 80대는 8회 初末 인생이라고 불러준다. 그리고 9회 초가 끝난 95세 이후의 연장전을 준비하라고 하면 나이에 대한 부담에서 벗어나는 듯하다. 뉴욕 양키즈의 전설의 선수 ‘요기 베라’의 명언으로 이글을 마무리한다. “야구나 인생이나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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