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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제공: Ilya Pavlo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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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소장 사료를 통해 본 방송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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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호

 

KBS 아나운서

한국 방송사가·언론학 박사

KBSi 대표이사 사장 역임

광운대 정보콘텐츠대학원장 역임

1927년 경성방송국 개국 홍보‘지라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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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사료의 기록이다. 여기, 이 사료 지라시(선전을 위해 만든 종이 쪽지)는 1927년 2월 경성방송국이 개국 즈음에 홍보용으로 만들어 배포한 것으로 보인다. 이 한 장의 사료 왼편에 는 큰 글자 ‘放送開始記念방송개시기념’과 큰 도장 모양의 동그라미 안에 쓰인 ‘京城放送局 發行경성방송국 발행’ 등을 볼 때, 그 시대에 만들어진 문건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아쉽게도 그 사료의 제작과정은 물론, 이 지라시가 필자에게 어떻게 전수되었는지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더욱이 한국방송 사료를 수집하고 그 역사를 연구하는 학도인데도 이 사료에 관하여 기술된 어떤 문헌을 발견하지 못했고, 관련된 전언傳言조차 경청한 바가 없다. 방송학 연구 학자나 원로 방송인들에게 자문을 요청해 보기도 했지만, 모두 다 처음 보는 사료라고 반응할 뿐이었다. 특히 한국방송 역사를 체험했고 꿰뚫고 있던 작고한 선인들에게 미리 자문을 받아 보지 못한 것이 못내 통탄스러운 마음으로 남아 있다.

이 지라시를 소장하고 있는 필자는 이 사료가 어떤 경로를 통하여 소지하게 되었는지도 도대체 기억이 없다. 미루어 짐작하건대, 오랫동안 많은 방송 사료를 수집하다가 어떤 책자에 끼어들어 온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게 아니면, 작고한 한국방송의 대가였던 노정팔(KBS 초대 민선 이사장, 1919~2002) 또는 최창봉(MBC 사장, 1925~2016) 선현 등이 소장 사료를 필자에게 넘겨줄 때, 받았는지도 모르겠다.

이 사료 중간에는 ‘ラヂオの 三大 使命라디오의 3대 사명’이 표기되어 있다. 이 3대는 ‘報導보도①, 敎化교화, 慰安위안’을 일컫는다. 라디오 프로그램 장르의 관점에서 볼 때 교화는 교양을, 위안은 오락을 일컫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러한 프로그램 장르 분류는 한국 방송 역사 100년을 넘나드는 2020년대에도 그대로 통용되고 있다. 비록 이 분류가 일제강점기에 쓰인 용어이지만, 그 이후에도 동양권에서는 엇비슷하게 사용되고 있다.

여기 지라시의 ‘報導’ 분야에는 內外내외·鮮內선내ニュース뉴스, 天氣豫報천기 예보, 市場物價시장 물가, 經濟市況경제 시황 등이 포함되어 있다. ‘敎化’의 범주에는 名士の講演명사의 강연, 各種の講座각종의 강좌, 初等學習講座초등학습강좌, 子供②の時間자공의 시간 등이 내재 되어 있다. ‘慰安’에는 和洋音樂화양 음악③, 朝鮮音樂조선 음악, 演劇연극, 其他內鮮기타 내선, 各種の娛樂각종의 오락 등으로 표기되어 있다.

이 사료 지라시 오른편에 ‘JODK京城放送局放送時間表경성방송국방송시간표’라는 제목으로 프로그램 편성표가 도표화되어 있다. 이 방송시간표 윗쪽 좌우에는 주파수와 연락처(전화 광화문 2150 2151)가 소개되어 있다. 편성표를 살펴보면 평일 오전 첫 프로그램은 오전 9시 40분 ‘株式期米주식 기미’ 즉 미두시세米豆時勢를 5분간 방송하고 중단한 후, 10시 5분에 다시 5분간 방송 후 중단한다. 10시 35분에 또다시 ‘株式期米’를 5분간 방송하고, 이어서 10시 40분에는 ‘料理獻立요리 헌립④’과 ‘日用品 價段일용품 가단⑤’이 한국어와 일본어로 20분간 교대로 방송되었다. 이어서 11시 5분에 株式期米가 방송된 후 11시 40분에 5분간 한 차례 더 방송하면 오전 방송은 끝난다.

오후 방송은 12시에 5분간 株式期米 방송을 시작한 후, 10분부터 1시까지 50분간 ‘晝間演藝주간 연예’ 프로그램을 방송한다. 이 주간 연예 시간에는 한국어 연예 오락 프로그램과 일본어 연예 오락 프로그램이 방송되었다. 1시 5분부터는 30분 동안 일본어로 각종 강좌 프로그램이, 1시 40분에 株式期米가 5분간 방송된 후 1시 50분에는 10분간 ‘天氣豫報천기 예보’가 편성되었다. ‘천기 예보’는 일기예보 프로그램을 의미한다.

이어서 오후 2시 10분, 25분, 50분, 3시 5분, 35분 등 다섯 차례에 걸쳐 5분씩 株式期米 프로그램이 편성되었다. 3시 45분 ‘ニュース뉴스’가 10분간 방송된 후 오후 방송이 종료된다. 저녁 방송은 6시에 시작되어 ‘子供ノ時間어린이 시간’이 30분간 방송되고 이어 6시 30분부터는 ‘各種講座각종 강좌’가 편성되었다. 7시부터는 ‘講演音樂ニュース•公知宣傳강연 음악뉴스•공지 선전’ 프로그램이 2시간 30분간 방송된 후, 9시 30분에 ‘翌日プログラム豫告•時報익일 프로그램 예고•시보’를 끝으로 그날의 방송을 마치도록 편성했다.⑥ 일요일 낮 편성은 오후 12시부터 2시10분까지, 저녁 편성은 오후 6시부터 9시 30분까지 방송되는데 프로그램은 평일 편성을 축약한 것들이다.

이상과 같이 경성방송국 개국 즈음에 만들어진 방송 사료 지라시 한 장을 살펴보았다. 이 땅에서 방송이 처음으로 등장하던 시대, 첫 라디오 프로그램을 일별하면서 천양지차天壤之差, 격세지감隔世之感을 통감한다. 라디오 1개 채널에 하루 세 차례 6시간 30분 정도의 방송인데 수시로 방송을 중단하는 게, 꼭 원시시대 풍경이다. 일제강점기 시대인 개국 당시에는 방송 시간 배정이 ‘한국어 3, 일본어 7’ 분량으로 방송되었다. 1928년경에는 3:4 정도로 좁혀졌다.

1 1927년 개국한 경성방송국.jpg

1927년 개국한 경성방송국, 정동 덕수초등학교 윗편에 있었지만 6.25 때 불타 없어 소멸됨

2 마현경, 이옥경 아나운서.jpg

1927년 1월 9일자 조선일보에 실린 기사, 오른편이

마현경, 왼편이 이옥경

1927년 경성방송국 개국 당시 한국어 방송인은 문서계원(편성원) 최승일, 아나운서 이옥경(1926년 시험방송 시대 선발)과 마현경이 있었다. 마현경은 경성방송국 개국(2.16) 40여 일 전인 1월 5일 아나운서 공개채용 시험을 거쳐 입사한 최초의 한국인 공채 아나운서이다.⑦
따라서 한국방송 100년의 역사는 한국 아나운서의 역사로부터 시작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기술인 노창성과 한덕봉이 있었지만. 참고로 노창성과 이옥경, 최승일과 마현경은 부부지간이었다.

① 보도(報導)의 ‘도(導)’자는 ‘이끌 도’로 1960대, 70년대 초까지도 보도의 한자어로 사용되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후 길, 이치를 뜻하는 ‘도(道)’자를 쓰기 시작하였다.

② ‘자공(子供)’은 일본어로 어린이를 뜻한다.

③ 일본과 서양음악을 일컫는다.

④ 獻立은 식단, 메뉴. ‘요리헌립’은 가정요리를 말한다.

⑤ 價段은 값, 가격. ‘일용품가단’은 일용품 시세를 이른다.

⑥ 한국방송공사(1977), 「한국방송사」, pp.38~39.

⑦ 김성호(1997), “최초의 공채 아나운서 마현경” -「한국방송인물지리지」, 나남출판, pp.1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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